한일합병(韓日合倂) 당시의 하수도(下水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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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 내무국 토목과에서 1930년에 발간한『경성도시계획서(京城都市計劃書)』에 의하면 대한제국시대에 시공된 하수도는 암거(暗渠)가 6,832m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註16] 그런데 암거가 6,832m 있었다는 것은 그보다 훨씬 많은 개거(開渠)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는 1923년부터 1926년까지 7년간에 시행된 제1기 하수도개수계획에서 볼 때 하수도의 구조별 분포가 암거(暗渠)보다는 개거(開渠)가 훨씬 더 많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상과 같은 하수도시설도 그 유지 관리가 잘 안됨에 따라 그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였으니 1938년도『경성부토목사업개요(京城府土木事業槪要)』에 의하면 합병 당시의 하수도사정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고 있다.

「경성부내는 성내를 관류(貫流)하는 청계천과 서부 용산방면으로 흐르는 욱천(旭川)을 우수(雨水) 또는 오수(汚水)의 배수간선(排水幹線)으로 하고 있다. 시정(施政) 당시의 상태는 양천 공(共)히 토사(土砂)로 매몰되고 각 지류(支流)는 전혀 계통(系統)이 서지 않으며 분뇨(糞尿)가 각 지구(支溝)에 방류되어 정체됨에 따라 실로 불결하기 짝이 없었으며 일조호우(一朝豪雨)라도 쏟아지면 탁류가 일대에 범람하여 교통 위생상은 물론 수도로서의 면목상 방치할 수 없는 상태였다. [註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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