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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제1기 하수도개수
조선총독부는 하수도의 개수를 위한 조사를 한 후 사업비를 100만원으로 한 7개년계속사업으로 다음과 같은 하수도개수계획을 세워 경성부에 보내고 경성부에서는 부비부담재원(府費負擔財源)에 대하여 신중히 검토하였으나 1915년까지는 시행되지 않았으며 [註18] 그후 1918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시행에 옮기게 되었으니 이것이 제1기 하수도개수계획이다. 계획의 내용은 1924년까지 7년간에 162만원을 투입, 우선 배수간선(排水幹線)인 청계천의 준설과 함께 배수불량한 17개 지선(支線)을 개수하는 것인데 개수연장은 개거(開渠)가 13,114.9m, 암거(暗渠)가 4,690.5m, 계 17,805.4m로 기록되고 있다. [註19]
개수된 하수도의 구조별 내용은 개거 13,114.9m 중 가장 많은 것이 양측에 돌을 입히거나 잔디를 입히는「장석(張石) 및 장지조(張芝造)」가 8,415m, 다음이 양측에 돌을 쌓는「적석조(積石造)」가 5,772m, 나머지는 석축 혼응토(混凝土)(돌과 흙을 다져 쌓은 개거)이다.
다음 암거는 모두가 철근혼응토조(鐵筋混凝土造)(철근과 흙을 다져 쌓은 암거)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특색을 이루는 것은 하수도사업과 함께 교량공사도 시행하였는데, 총 55개소 중 청계천유역이 50개소, 욱천유역(旭川流域)이 5개소로 되어 있다.
한편 하수도에 따르는 부대시설로는 맨홀 35개, 오수(汚水)받이 135개, 측구(側溝)(U형측구) 6,539m인데 그 중 욱천유역은 오수받이 3개소, 측구 456m이고 나머지는 모두 청계천유역임을 <표:제1기 하수도개수 실적>에서 알 수 있다.
그리고 어느 구간(區間)을 막론하고 깊이 최소 0.3m로부터 3.3m까지 개수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준설(浚渫)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② 제2기 하수도개수
이상 제1기 사업으로서 청계천과 욱천의 본류(本流)와 가장 시급을 요하는 지선(支線)의 개수를 하였으나 이는 개수를 요하는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제1기 사업에 계속하여 제2기 사업을 서둘지 않으면 아니되었다. 더구나 제1기 사업도 계획기간 중 물가의 앙등으로 사업비가 부족하게 됨에 따라 당초 계획물량을 시행하지 못한 곳도 있었으므로 이를 포함하여 개수가 시급한 9선(線)을 선정, 제2기 하수도개수사업을 수립, 시행하게 되었다.
사업비 총 125만원(국고보조 625,000원, 부비(府費) 625,000원)으로 1925년부터 1930년까지 6년간의 계속사업으로 결정, 1925년 10월 16일 착공하였으나 그 후 국고보조금 40,000원이 삭감됨에 따라 사업년도도 1년 더 연장하여 결국 총사업비 121만원의 7개년사업으로 시행되었다.
사업실적으로는 신교동∼도염동간 간선(幹線)을 포함한 7개 간선과 사직동∼도염동간 지선(支線)을 포함한 6개 지선의 관거(管渠) 12,376.89m와 이에 따르는 부대시설로 되어 있는데 부대시설로는 L형 하수도(L형측구) 2,281.43m, 측구(U형측구) 3,828.33m, 측구암거(U형측구에 덮개가 씌워진 것) 172.35m, 가구(街溝)(V형측구) 675.54m와 맨홀 33개소(個所), 빗물받이 55개소, 오수(汚水)받이 78개소, 연결관(連結管) 20개소, 낙차공(落差工) 34개소 그리고 교량가설 32개소로 되어 있다. 시공구간별 내역은 <표:제2기 하수도개수 실적>와 같다.
③ 구용산(舊龍山) 배수계획(排水計劃)
구용산은 지대가 낮을 뿐 아니라 당시만 하더라도 한강의 제방이 축조되지 않았던 터이므로 홍수가 날 때마다 많은 피해를 입어 왔다. 1920년 7월 상순(上旬)의 홍수 때에는 인도교의 수위가 11.76m까지 올라 침수호수(浸水戶數)가 2,600여호에 달하는 참상을 빚어 한강에 제방을 축조할 필요가 인정되어 국비로 방수공사(防水工事)를 시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와 함께 내수배제대책사업(內水排除對策事業)이 시행되지 않고서는 시가지의 침수를 면할 수 없으므로 하수도개수사업도 병행 시행케 된 것인데 그 중에서도 가장 시급을 요하는 고지배수공사(高地排水工事)를 경성부사업으로 시행하기로 하고 총사업비 42,000원(국고보조 210,000원, 지방비 보조 20,000원, 부비(府費) 190,000원)으로 1921∼1923년까지 3개년 계속사업으로 1921년 10월 30일 착공했다.
사업실적으로는 원효로 1가∼용산경찰서앞 간의 배수간선을 포함한 8개 간선과 이들 간선에 연결된 5개 지선(支線)의 관거(管渠) 6,007.6m와 이에 따르는 부대시설로 되어 있는데 부대시설로는 맨홀 17개소, 낙차공(落差工) 14개소, 토구공(吐口工) 3개소, 토류석원(土留石垣)(호안석축(護岸石築)) 4개소, 빗물받이 4개소, 탄구토구(呑口吐口) 및 취합공(取合工)(맨홀) 21개소, 교량 1개소, 언제(堰堤) 및 도로부체(道路付替)(부도로(副道路)) 1개소, 수고장석공(水叩張石工)(세굴방지(洗掘防止)를 위한 돌입힘) 1개소, 수문이전(水門移轉) 1개소, 정호신설(井戶新設) 1개소, 재래(在來) 하수구개수 54.5m, 측구(側溝) 1,443m, 측구취입구(側溝取入口) 1개소, 노면사리부설(路面砂利敷設) 1,171.3m(413.3㎡)로 되어 있다.
시공구간별 내역은 <표:구용산 배수사업 실적>과 같다.
④ 제3기 하수도개수
제3기 하수도개수사업은 1933년부터 1936년까지 4년간에 걸쳐 시행되었다. 총 사업비 299,413원을 투입, 암거 19,507.61m를 개수하였는데 시행구간 및 공정은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다만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개거는 전혀 없고, 암거만 있는 것으로 보아 시급한 곳은 어느 정도 해결되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사업비재원(財源)은 국고보조 149,708원, 부비(府費) 149,707원으로 각각 반(半)부담하였다. [註20]
⑤ 제4기 하수도개수
제4기 하수도개수사업은 1937년부터 1943년까지 7년간의 계획사업인데 개수계획 연장은 암거 8,397.4m로 되어 있다. 역시 시공구간 및 공정은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사업비 재원은 총 173,389원 중 국고보조 3,756원, 부비(府費) 169,633원인데 태평양전쟁이 패전으로 끝난 사정에 비추어 과연 계획대로 시행되었는지 의문이다. 다만 1938년 현재의 추진상황을 보면 1937년에 19만원, 1938년에 12만원이 투입되었다. [註21]
⑥ 부비(府費) 부담 하수도사업
이상 제1, 2, 3, 4기 하수도개수사업과 용산배수사업 이외에 부비 부담 하수도사업이 있는데 앞에서 시행된 사업 모두가 사업재원을 국고보조와 부비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하여 부비부담 하수도사업은 전액(全額) 부비만을 사업재원으로 하였다.
1921년부터 1937년까지 17년간에 걸쳐 시행된 이 사업은 부비 1,062,349원이 투입되었는데, 사업실적으로는 개거 69,515.94m와 암거 49,912m 계 119,427.94m를 개수한 것으로 되어 있다. 시공구간과 공정은 역시 기록이 없어 알 수가 없다. [註22]
⑦ 기타 사업비에 의한 하수도사업
이상의 하수도사업은 그 사업비의 비용이 하수도사업비에 의한 것이고, 하수도비 이외의 비목(費目)에 의한 하수도시설이 있다.
1938년말 현재 하수도비 이외의 사업비로 시행된 하수도개수실적을 보면 시구개수(市區改修)에 수반한 하수도공사로서 1930년부터 1937년까지 476,977원이 하수도사업에 투입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그 개수연장은 나타나 있지 않으며, 타관청시행분으로 철도국과 육군에 의해 시행된 것이 있는데 사업비 52,536원을 투입, 개거 950m와 암거 8,660m 계 9,610m를 개수하였으며 이외에도 1921년부터 1937년까지 249,496원을 투입, 개거 27,196.72m와 암거 106,629.55m 계 35,768.76m를 개수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역시 시행구간과 공정은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註23] 다만 이상의 하수도개수실적과 지역별 개수상황을 총괄하면 <표:경성구부역(京城舊府域) 하수도개수 상황 일람표>, <표:경성구부역(京城舊府域) 하수도개수 현황조사결과>와 같다.
멀티미디어자료
   
청계천 준설공사(浚渫工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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