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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의 동쪽 기슭, 지난날 남소영(南小營)이 있던 자리에 을미사변(乙未事變)을 중심으로 한 순국충절(殉國忠節)들의 제사를 위해서 광무 4년(1900)에 장충단(奬忠壇)을 모셨다고 함은 제3권에서 설명된 바 있다. [註6] 남산 동쪽 기슭의 계곡 사이에 위치한 이 곳 일대를 장충단공원으로 이름하여 경성부가 관리하게 된 것은 1919년 6월부터였다. 경성부는 이 곳에 벚꽃 수천그루를 식재(植栽)하는 외에 광장, 연못, 어린이놀이터, 산책로, 공중변소, 교량 등을 시설하였으며, 상해사변(上海事變) 때 결사대(決死隊)로 전사한 육탄(肉彈) 3용사의 동상도 세웠다. [註7]
장충단공원 동편에 이등박문(伊藤博文)의 보리사(菩提寺)인 박문사(博文寺)가 들어서게 된 것은 1929년부터의 일이다. 공원의 동부 소나무 우거진 지역 41,882평의 땅을 나누어 총경비 27만 5천원을 들여 이 일본식 사찰이 완공된 것은 1931년이었다고 한다. 이 박문사의 본전(本殿)과 서원은 원래 경복궁내 선원전(濬源殿) 및 부속건물을 이축(移築)한 것이며, 입구의 문은 당시는 이미 경성중학교 자리가 되어 있던 구(舊)경희궁 흥화문(興化門)을 이축한 것이었다. [註8]
육탄3용사의 동상이라든가 박문사의 건물 등이 광복 후에 일찌감치 철거되었음은 물론이다. 오늘날 그 당시의 박문사 자리에는 영빈관(迎賓館) 및 신라호텔이 들어서 있으며 장충단공원에는 사명당, 이준열사의 동상이 세워지고 장충체육관, 어린이야구장 등의 새 명물(名物)이 생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
태조 4년에 조영(造營)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인왕산 동남쪽 기슭의 사직단(社稷壇)이 사적으로 지정된 것은 1922년 5월이었고 사직단과 그 인접지 66,619평이 경성부에 이관된 것은 그 해 10월이었다. 경성부가 이곳에 순환도로, 정자, 벤치, 조명등 등을 설치하여 공원으로 개설한 것은 1924년 5월부터의 일이다. 1932년 7월에 매동공립보통학교(梅洞公立普通學校) 이축공사가 시작되자 공원부지의 북쪽 일부 약 500평을 분할하여 동교(同校)의 부지로 편입하였다. [註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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