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창공원(孝昌公園)과 삼청공원(三淸公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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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자리한 효창원(孝昌園)은 정조의 제일자(第一子)로 태어나서 세자책봉까지 받았으나 5세의 어린 나이로 죽은 문효세자(文孝世子)의 분묘(墳墓)의 땅이었다. 원래는 묘역이 광활하여 송림이 울창한 일대승지(一大勝地)였으며 같은 묘역 안에 정조의 후궁이며 문효세자의 생모이기도 한 의빈(宜嬪) 성씨(成氏)의 묘, 순조의 후궁인 숙의(淑儀) 박씨(朴氏)의 묘, 숙의 박씨의 소생인 영창옹주(永**翁主)의 묘 등이 같이 있었다. [註10] 일본인들이 이 효창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1894년의 청일전쟁 때 인천에 최초로 상륙한 대도여단(大島旅團) 3,000명의 병력이 효창원 앞 송림안, 원래 만리창이 있던 곳에 야영하면서 부터의 일이다. [註11]
경성부가 효창원의 일부 81,460평을 공원용지로 책정한 것은 1924년 6월이었고, 순환도로, 공동변소 등을 시설하면서 일반인의 이용을 허용하기 시작한 것은 그 해 8월부터의 일이다. [註12]
성현(成俔)이『용재총화(齋叢話)』에서 도성안에 경치좋은 곳으로 제일로 꼽은 [註13] 삼청동의 이 골짜기가 공원으로 관리되기 시작한 것은 1934년 3월부터의 일이다. 성현이「산고수밀(山高樹密) 암학심수(岩壑深邃)」라고 했듯이 북악산록의 깊은 송림으로 이루어진 이 공원은 그 자체가 그윽한 삼림공원이어서 특별히 시설할 필요가 없었으므로 경성부는 순환도로 · 산책도로 · 정자 · 벤치 · 풀장 등을 시설한 것으로 그쳤다. [註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