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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합방 후 일제의 침략 목적에서 각 방면으로 철도가 설치되자 경성이 교통의 요충지로서 외국인들의 내왕이 많아졌다. 철도국에서는 외국인 여행자들의 편의를 도모하고자 호텔을 설립하였다. 환구단(**丘壇)터(남별궁) 6,750평에 1913년 4월에 기공하여 1914년 9월 30일에 준공한 지하 1층 지상 3층의 벽돌건물로서 허리벽 기타 요소에 돌을 붙이고 외벽에는 흑갈색 유약을 바른 화장(化粧)타일을 붙였으며 장식품은 대부분 영국산(英國産)이다.
중요설비를 보면 1층은 정면앞 중앙에 회전식문, 현관 뒤쪽의 대홀은 일반객의 휴게실 또는 대합실로 충당하고 식당은 30여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기타 독서실, 당구장, 주장(酒場), 음악실 등이 설비되어 있고, 2층 이상은 약간의 객실을 제외하고는 침실과 부속실로서 그 수는 69실(室)이다. 그 중 귀빈실 5, 특별실 10, 상등침실 29, 보통침실 17, 부청인실 5, 급사실 3이다. 지하실은 조리실, 제빙실, 세탁실 등으로 되어있다. 설계는 독일인 게에데라란데가 담당하였고 양식은 르네상스식이다. [註3]
이 건물은 1968년에 헐려지고 그 자리에 지금은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 있다. 이 호텔의 후원에는 3층의 팔각당이 있는데 이것은 고종이 황제로 즉위할 때 천신지지(天神地祗)와 태조고황제(太祖高皇帝)에게 고제(告祭)하기 위하여 만든 것이며 이를 환구단(**丘壇)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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