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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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주의와 양식주의(樣式主義)가 엇갈려 나타나는 1930년에 또한 국수주의적(國粹主義的)인 건축이 대두되었다. 즉, 국수주의적인 양식은 서구의 벽체에 일본식 지붕을 올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1935년도에 경복궁미술관 설계를 공모하였을 때 이러한 경향의 양식이 당선되었다. 즉, 경복궁미술관은 소위 시정25주년기념관(施政25周年紀念館)으로 그 설계를 공모하였을 때 당선자는 총독부 기사(技師) 의야요(矣野要)이며 그의 설계에 따라 건립한 것이나 1939년에 준공된 건물은 그 설계 중의 일부만이고 그때 총공사비는 13만원이다. 원 설계안은 총 3동(棟)이나 이 가운데 1동만 건립한 것이며 나머지 2동은 건립되지 않았다 한다. 일본 국수주의의 영향 하에서 세워진 것이기는 하나 그 지붕은 한옥(韓屋)에 가깝게 하려고 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註7]